책 줄거리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후입니다. 인간은 모두 멸종하고, 인간의 지식과 문화는 기억력이 좋은 700번 로봇의 한편에 남아 신의 이야기라고 전해지는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로봇에는 각기 식별번호가 있고, 그에 따른 차별이 있는 시대입니다.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 로봇은 흔히 말하는 생활용 로봇입니다. 빗자루 쓸기라든가 불 키우기 같은 기능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세 자릿수로 가면 고지능 로봇으로 기억력이 매우 좋고 똑똑합니다. 네 자릿수 로봇은 감정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인간과 비슷한 로봇입니다. 로봇 세계에서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로봇이 열등하다는 차별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책은 연작으로 이루어져 3편으로 나누어집니다. 1편은 인간은 없고, 인간은 전설 속의 신처럼 여겨지는 시대의 로봇의 이야기입니다. 2편은 모종의 이유로 인간이 태어나고, 신을 직접 대면한 시기의 로봇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대면한 로봇은, 거의 대부분 마치 신을 대면한 것처럼 무조건적인 복종과 경애를 표현합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공 케이는 우리 로봇이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3편은 인간과 로봇의 이야기가 함께 나타납니다. 이 시기의 로봇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인간을 대면하고 난 후 신을 대면한 것 같은 느낌에 빠져 사유하지 못하는 '기계'로 전락한 로봇, 그리고 그러한 로봇에 반감을 가져 인간에 저항하는 로봇입니다.
작가의 말
"이것은 결국 로봇의 이야기이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친 경애다."
<종의 기원담>은 한국 SF 최초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23년에 걸쳐 완성한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우주의 모든 사물에 깃든 생명들을 향한 경애를 표현합니다. 작가가 종의 기원담 1편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즈음이었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처음 시작하여, 첫 편을 완성한 것은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2편도 그 해에 써서 완성했습니다. 3편은 마흔여덟 살에 완성했습니다. 작가는 그러므로 이 세 편은 각기 다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세 편을 쓴 사람 각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며 한 주제에 대한 관점이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에 맞추기 위해 단어 속 숨은 뜻을 찾지 말라고도 합니다.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 그대로의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로봇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무기생명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헌사이자, 사물에 깃든 생명에 대한 경애입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의 제목인 <종의 기원담> 에도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로봇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간은 로봇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질문처럼, 작가는 생명과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하는 철학적 질문을 책을 통해 던집니다. 또 3편에서 주인공 케이는 유기생명체를 없애기 위해 시멘트로 덮어 없애는 일을 합니다. 유기생명체는 자기들을 녹슬게 만들고 고장 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유기생물로부터 나오는 석유로 공장을 돌려야 로봇이 창조될 수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합니다. 결국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홀로 존재할 수는 없음을 느끼게 합니다.
추천 리뷰
줄거리를 말하기 정말 힘든 책 중에 하나입니다. 작가가 20년에 걸쳐 쓴 만큼 이야기가 방대하고 각각의 편이 다른 책인 것 같이 느껴져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를 쓰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후입니다. 인간은 모두 멸종하고, 인간의 지식과 문화는 신의 것이라고 전해지는 시기입니다.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게 됩니다. 멸종 직전 인간은 로봇을 왜 만들었을까? 자신을 남기기 위해서일까? 1편에서 유기생물학 연구에 빠져있던 로봇들은 기존 로봇들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유기물을 되살리는 것에 성공합니다. 모순적이게도 유기물은 로봇에게 치명적입니다. 나무가 살기 위한 산소가 풍부한 환경은 로봇을 녹이 슬게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로봇은 유기물에 매료됩니다.
주인공 케이 역시 유기생물학에 매료되어 2000번대 로봇을 닮은 생명체(인간)를 만드려고 했다가 연구소를 떠납니다. 그리고 연구소에서는 케이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인간을 배양해 냅니다. 연구소에 다시 돌아온 케이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로봇들을 만나고, 이대로라면 로봇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봇은 인간이 죽으라면 죽고, 인간의 말을 신처럼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로봇은 노예처럼 따르기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인간을 죽이고, 3편에서는 환경청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유기 생물을 처리하는 일을 맡습니다.
이 책에서 로봇은 인간 같기도 하고 로봇 같기도 합니다. 과거엔 부려지는 존재였다가 기득권이 되었다가, 그러면서 차별, 정치적 불안정 같은 인간사의 안 좋은 부분을 답습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이 기존 로봇을 다루던 SF 소설과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정말 신 같은 존재, 로봇처럼 스피커로 말하지 않고 내부 기관을 울리며 말하는 존재, 눈동자에서 온갖 감정을 다 말하며, 연결 부분이 없고 매끄러운 육체를 지닌 인간을 보며 저게 유기 생물이라면 우리는 무기물인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책이 담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차별, 환경 문제, 종교 문제, 자아와 주체성에 관한 이야기, 리더에 관한 이야기, 올바른 교육이란 등등. 그런데 이 책이 거의 20년에 걸쳐 쓰인 이야기고, 작가 또한 다른 책이라고 봐 달라고 했기 때문에 납득이 가는 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