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소설은 1장 모스바나, 2장 프림 빌리지, 3장 지구 끝의 온실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 초반의 배경은 2129년으로, 더스트생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영이 주인공입니다. 아영은 식물의 놀라운 생명력에 매료되어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과학자이긴 하지만 괴담도 좋아해서 괴담 커뮤니티를 즐겨보곤 합니다. 아영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 덩굴식물인 모스바나가 수상할 정도로 빠르게 증식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노인의 정원에서 본 풍경, 덩굴식물과 잡초가 뒤섞여 무성하고 알 수 없는 푸른빛을 내뿜던 정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아영은 모스바나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괴담 커뮤니티를 통해 식물에 관해 알아봅니다. 마침내 아영은 더스트 시대를 살았고, 모스바나를 알고 있는 아마라, 나오미 자매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의 배경은 2129년 보다 더 과거인, 더스트로 인해 멸망해 버린 세계입니다. 안개와 함께 찾아오는 더스트로 인간은 물론 동물, 식물도 다 죽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돔을 만들어 살고 서로의 돔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나오미는 더스트에 내성을 지닌 탓에 이리저리 쫓기다 언니인 아마라와 함께 소문 속 도피처를 찾아 숲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숲에서 더스트를 맞닥뜨리고, 꼼짝없이 죽겠다 싶은 순간에 프림 빌리지에 도달합니다. 프림 빌리지는 평화로운 곳이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더스트를 막아 줄 돔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레이첼이라는 식물학자가 건네는 작물들과 더스트 분해제 덕분이었습니다. 프림 빌리지 안에서도 식물학자 레이첼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리더인 지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프림 빌리지에 관한 소문이 밖으로 퍼져 침략자들이 나타나며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지수는 떠나는 사람들에게 마을 밖에 심을 식물을 나눠주며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가꾸고 마을 밖에 또 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과연 세계 곳곳 또 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까요? 그래서 더스트로부터 피난처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까요?
드라마화 소식
한국 SF 소설계를 이끄는 유명한 젊은 작가라고 한다면 김초엽, 천선란, 정세랑 작가 세 명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은 그 중 김초엽 작가의 첫 단편집입니다. 제 생각에 김초엽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습니다. 제가 이 책으로 김초엽 작가를 알게 되어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 책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다만 저는 짧은 연작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출간 1년 만에 15만 부가 판매되었고, 출간 3주년을 앞두고 20만 부 판매를 돌파했습니다. 일본, 대만, 중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프랑스 총 6개국과 출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22년에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스위트홈' '빈센조' 등으로 유명한 스튜디오드래곤과 영상화 계약을 맺었습니다. 더스트가 대기에 퍼진 지구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디스토피아물 같은 느낌도 있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재난물로만 표현하는 건 좀 아쉬울 것 같습니다. 요즘은 넷플릭스나 티빙, 디즈니 등 OTT 채널에서 이런 장르물을 많이 제작하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제작비를 지원한다면 보기에도 좋고 전하는 메시지도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 제작 결정이면 지금까지 시간이 좀 지났는데,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이 없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리뷰(결말 포함)
책을 다 읽고 나면, 말레이시아 어딘가에 가면 프림 빌리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동물)이 피라미드의 윗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물은 식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식물은 아닙니다.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합니다. 결국 더스트 시대가 끝날 수 있었던 시작은 프림 빌리지를 떠난 사람들이 각자 심은 모스바나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스바나는 인간이 가본 적 없는 지역까지 번성한 우점종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스바나는 스스로를 번성시켜 더스트를 몰아냄으로써 기꺼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인간이 우점종이라면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모스바나는 자신의 경쟁력을 만드는 더스트라는 환경 자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식물이었습니다. 더스트가 사라지면서 다시 식물 생태계가 생겨났고, 모스바나는 우점종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가시의 크기를 작게 만들고, 눈에 띄는 발광성 돌연변이를 없애버렸습니다. 모스바나는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아 끊임없이 증식하고 공격하고 침투하는 성질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더스트 시대의 흔적을 지우고 스스로 발전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모스바나의 성질은 바다 같이 거대하고 희생적인 느낌이기도 하고, 도태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느낌이라 감동적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이 책에서 저는 특히 레이첼과 지수의 관계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프림 빌리지의 온실을 떠나면 지수가 더 이상 레이첼만의 정비사가 아니게 되므로 숲 밖에서 살 수 있는 자생종을 넘겨줄 수 없다는 레이첼의 이야기는 가슴을 안타깝게 합니다. 레이첼이 인간형 로봇이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레이첼의 감정이 진짜일까, 자신이 조종한 것은 아닐까 평생 후회만 하던 지수의 마음도 슬펐습니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지수의 감정을 알게 되고, 레이첼이 스스로 평온을 찾은 결말까지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