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파견자들>의 배경은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아포로 가득 찬 세계입니다. 아포는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고 사람들에게 광증을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이로 인해 지구는 낯선 행성으로 변해버립니다. 사람들은 아포를 피해 어둡고 우울한 지하 도시로 떠밀려와 삶을 이어가는 동시에, 혹여나 광증에 걸릴까 두려워합니다.
주인공 태린은 누구보다 지상을 갈망합니다. 태린의 스승 이제프가 말해준 지구의 모습,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저녁노을의 황홀한 빛 때문입니다. 태린은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이제프와 함께 세상을 탐사하기를 원합니다. 책에 나오는 파견자란, 지상에 파견되어 아직 범람체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 있는지 지상을 조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태린은 파견자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필요한 과정을 이수해 나갑니다. 이 시기 많은 사람들은 뉴로브릭이라는 기억 보조 장치를 몸 안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린은 늦은 뉴로브릭 시술로 인한 부작용으로 머릿속에서 뉴로브릭과의 연결을 끊어 두었기 때문에,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지 못해 과정 이수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 태린에게 이상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옵니다.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년 같기도 한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의 존재입니다. 이제프는 뉴로브릭의 오류로 인해 생겨난 문제일 거라 말합니다. 태린은 이제프의 말을 믿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혹시 광증에 걸린 건 아닐까 의심합니다. 하지만 머릿속 목소리의 도움을 받으며, 태린은 그 목소리에 "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쏠" 때문에, 태린은 정식 파견이라기보다는 쫓겨나는 듯 파견자로서 지상에 올라가게 됩니다. 처음 지상으로 나간 태린은 마치 유화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화려한 색채로 빛나는 지상의 풍경에 압도됩니다. 인간을 광증으로 몰고 가는 범람체들의 세계는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지상에서도 "쏠"의 목소리는 여전합니다. 태린은 그 목소리를 따라 파견자 무리를 한 장소로 이끕니다. 그곳에서 인간과 범람체가 혼합된 "늪인"을 만나게 됩니다.
책 속으로
"식물의 세계에서 균류의 세계로"
<파견자들>은 더스트라는 절망으로 물든 세계를 배경으로, 푸른빛을 발하는 덩굴식물 모스바나와 미약해 보이나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인 <지구 끝의 온실> 이후 2년 만의 장편소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겨울, 한 가정집으로 입양된 여자아이가 쓴 수상한 쪽지에서 출발합니다. 여자아이는 낯선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채, 창밖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보낼 수 없는 편지만 쓸 뿐입니다. 집안의 어른들은 울다 지쳐 잠든 여자아이의 방에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쪽지를 발견합니다.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어린아이가 썼으리라고는 보기 어려운 내용의 쪽지 앞에서 어른들은 걱정에 잠깁니다. 이 쪽지는 대체 누구에게 전하는 메시지일까?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은 메모인 걸까?
태린이 만난 범람체들, 늪인 뿐만 아니라 범람체에 오염된 과일, 식물마저 태린에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어서 가까이 와서 자신을 살펴보라고.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고 먹어보라고." 이에 태린은 "범람체는 인간을 미치게 한다. 이성을 집어삼켜 광기와 죽음에 빠뜨린다."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립니다. 범람체가 가득한 도시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득 찬 곳이며, 인간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잊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이처럼 소설 <파견자들>은 이야기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느낀 점
(여기서부터는 책 결말이 포함됩니다.) <파견자들>의 배경은 미래 지구이고, 이 시기의 지구는 범람체들에 의해 오염되어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하세계로 가서 삶을 지속합니다. 보통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 생물이라고 하면 지성과 몸을 가진 외계인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지구를 침략한 외계 생물은 바이러스나 포자류, 균류 같은 생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듯 외계 생물에 감염될 수 있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범람체가 되어 자아를 잃게 됩니다. 책에서 광증이라고 불리는 증상입니다. 그러나 태린이 지상에서 발견한 것은 범람체에 감염되었음에도 어느 정도의 자아를 지니고 있는 "늪인"입니다. 늪인들은 범람체의 기억을 공유하고 동화되었으면서도 동시의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태린은 처음엔 늪인에 저항하다가, 결국 어느 정도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린에 의해 지하의 사람들은 지상으로 올라와 범람체와 공존하기도 하고, 지하에서 계속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외계생물로 표현되지만, 결국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존재와 공존할 때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예 그들을 배척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유지한 채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그들에게 흡수 동화될 것인가 하는 고민 말입니다. 책에서는 흡수 동화되는 것이 자신의 의지는 아니지만, 결국 그렇게 되면 이지를 잃고 난폭하게 되거나, 나를 잃어버리고 '내가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말에 줏대 없이 흔들리면 나 자신은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정답은 아닌듯합니다. 범람체를 증오하던 지하세계의 사람들도, 결국 지하세계에서 영원히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파견자를 계속해서 지상으로 올려 보내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중심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의 길을 열어놓는 점이라는, 당연한 이야기가 정답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