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인공 나인은 이모와 단둘이 살아가는 평범한 17살 고등학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인에게 식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손톱 사이에서는 새싹이 돋아납니다. 나인에게 승택이라는 소년이 다가오더니 '너와 나는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모를 통해 듣게 된 비밀은, 나인과 이모는 지구에서 말하는 그런 이모와 조카 사이가 아니며, 나인은 누브족의 '아홉 번째 새싹'이며 특별한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브족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외계인이며, 본래 살던 별이 멸망하게 되어 별을 떠나 지구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모와 나인 외에 별을 떠나온 누브족이 더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나인은 새로이 알게 된 자신의 존재가 혼란스럽지만, 여전히 곁에 있어 주는 이모와 친구 현재와 미래, 그리고 승택 덕분에 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새로 생긴 식물과 대화하는 능력 덕분에 나인은 2년 전 실종된 학교 선배 '박원우' 실종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위험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숲이 전해 준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고등학생 몇 명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진지하게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나인과 친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등장인물
유나인 : 얼마 전까지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의 소리가 들리고 손톱 사이로 새싹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브족'이라고 불리는 외계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해승택 : 나인과 같은 누브족으로, 어느 날 나인 앞에 나타납니다. 승택은 나인과 이모 외에, 고향별을 떠난 다른 누브족의 씨앗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자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신미래 : 열세 살에 나인과 현재의 반으로 전학 왔습니다. 나인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이후, 셋은 비밀이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강현재 : 나인과 미래와 늘 함께 다니는 친구입니다. 미래가 성적이 떨어져 울면 함께 울고, 나인이 옆 반 친구와 싸워 다쳤을 때 대신 울어주는 친구입니다. 나인, 미래, 현재는 세 명이서 쭉 친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인은 미래와 현재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도 나인이 스스로를 자각한 후 친구들을 멀리하자 관계가 멀어진 듯한 서운함을 느낍니다. 이 세 명이 화해 아닌 화해를 하고 서로를 이해해 주는 우정도 아름답습니다.
박원우 : 나인, 미래, 현재가 다니는 학교의 선배입니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으로 사라졌습니다. 가출인지 실종인지는 모르지만, 원우의 아버지는 학교 교문에서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아들을 찾고 있습니다.
권도현 : 원우의 친구이자 실종 당일 마지막 목격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원우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나인과 친구들이 불편하게 여겨집니다.
느낀 점
영상화를 한다면 정말 어울리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SF와 추리 요소가 합쳐져서 드라마화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합니다.
천선란 작가는 전작 <천 개의 파랑>에서도 그랬듯이 소외된 자들의,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인은 인간이 아니라 누브족 점에서 지구에서 낯선 소수자이며,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인의 목소리는 무시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인은 주변의 작은 목소리들을 무시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등장인물과 소설의 설정이 매우 흥미로운데, 주인공은 외계에서 왔고 배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땅에서 피어납니다. 평범한 인간인 줄 알았던 내가 실은 외계인이었고, 나를 뺀 친구 2명의 사이는 어색하며, 학교 선배는 알고 보니 살인자였습니다. 그리고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선배는 실은 죽었으며, 사건을 파헤치다 보니 그 선배는 누브족을 믿어서 외계인을 믿는 모자란 아이라고 따돌림받다가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나인은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나갑니다. 주변의 작은 진실에 귀를 기울이며, 아무것도 지나치지 않고 말입니다.
책을 보면 '스스로 추구하는 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고민하게 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가진 점이지대에 대해 말하는데, 그가 끊임없이 괴롭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점이지대에 있는 것입니다. 점이지대에 있는 사람은 갱생의 여지가 있지만, 그 점이지대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죄책감도 무엇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계속 합리화합니다. 이것은 학교 선배인 권도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누브족의 이주 책임자였던 승택의 아버지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는 아니고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겠습니다. 아버지는 고향별을 떠나기 원하지 않는 자들은 남겨두고 왔다고 말했지만, 실상 멸망해 가는 별에 남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두고 온 것'이 아니라 '원해서 남은 것'이라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버리고 온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승택은 아버지라고 여긴 존재를 끊어냅니다. 선조가 보인 야만성에 잠식되지 않고, 윤리적으로 잘못된 짓이라는 걸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점이지대를 지키고, 끔찍한 것을 끔찍하다고 느껴야 합니다.